난 세딸의 맏이로 자랐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때...우리집은 각 딸들에게 방을 하나씩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때 까지 할머니가 우리와 같이 지내셨고...안방이 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방 하나에 딸 셋이 우르르 몰려 지내야 했었다.
그래도 엄마는 같은 방에 지내더라도...이불은 각자 각자..따로 줬었고...맏이였던 나에게는 책상도 준비해 주셨었다.
그 책상에는 사춘기 시절...이것저것 갖가지 아이템들(?)을 모아...서랍마다...책꽂이마다 꽂아 놓았었다.
문제는 나보다 9살 어렸던 막내...
한참 호기심이 강한 시기였고...큰 언니의 아이템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막내는 내가 학교에 갔을 때 몰래 몰래 만져보고...처음 그대로 완전범죄마냥...제자리에 두는데....하교 후 난 항상 동생이 만진 걸 눈치챘었다.
그러면 난 있는대로 소리 지르고...동생은 울고...중간에 낀 둘째는 이리저리 눈치만...결국 둘째가 막내를 데리고 도망가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었다.
그 기억이 강했던 나는...다꽁에게는 그런 기억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정에 얹혀 살다보니...다꽁에게 방을 따로 하나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꽁이 유치원에 들어 갈 때...책상을 중고등학생이 사용해도 될 만큼 크고 서랍이 많고...책상위에 올라가는 책꽂이도 큰 책상을 구입했다.
거실 한켠...책상 두고...친정부모님 이하 모든 식구들을 불러 모아...이 책상은 다꽁의 공간이니...무슨 일이 있어도 만지지 말아라....다꽁만 만져라...했다.
친정 엄마에게 책상 위에는 청소도 하지 말아라...했다.
잠시 후 다꽁의 책상은 책상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이것 저것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이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는 그 모습에 답답해 숨이 막혀 죽겠다고 하실 정도였지만...절대로 청소도...건들이지도 말아라 했었다.
다꽁이...그 공간은 어른들이 절대로 건들이지 않는 다는 걸 알자...책상 위에 물건을 올리면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설날 세뱃돈으로 받은 몇 만원도...책상위에 던져 놓고...며칠...
일기장도 아무렇게나 책상위에 던져 놓고...며칠...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들도 던져 놓고 며칠...
다른 곳에 놔 뒀거나 내 눈에 보였으면 왜 저런걸 샀냐고 야단 칠 것도...다꽁의 책상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다꽁은 책상위는 완전히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아무런 의심없이..던져 올렸다.
그러면서...난 다꽁이 무엇을 샀고...어떤 걸 가지고 놀며...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알게 되었다.
또한 한번씩 다꽁 몰래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진 일기장도 몰래 몰래 훔쳐 보기도 했다.
예전 동생이 만져서...꼼꼼히 챙겼던 난...조금만 틀어져도 누가 만졌다는 걸 알아챘지만...아무렇게나 던져 놓아도 아무도 건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 챈 다꽁은...조금씩 틀어져도...전혀 몰라 봤다.
그렇게 일년 조금 넘게 지내다...친정 근처로 이사를 나오며...다꽁에게 방을 하나 마련해 줬다.
평소 방문을 절대로 닫지 않는 다꽁이...
하지만 다꽁이 문을 닫으면...난 절대로...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대체로 다꽁이 문을 닫았다는 건 나랑 싸워서 감정이 좋지 않을때니까...내가 아무리 화가 나도...다꽁이 문을 닫고 들어가면 난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밥 먹어라 라는 말도...문을 닫아 둔 채....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면...슬그머니 문을 열고..나와...다꽁은 내게 미안하다 말한다.
또한 방에 대한 정리 정돈은 절대로 하지 않으니...처음에는 다꽁의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무언가가 널려있는 상황이었다. 한번씩 방 청소를 할 때가 되면...다꽁에게 방 청소 하고 싶으니...바닥에 널린 것들 좀 치우라고 요구하고...다꽁이 치우면 청소를 하고...다꽁이 치우지 않으면 청소를 하지 않았다.
초등 내내...한번씩....인터넷에 올라오던 흔한 여대생의 자취방 보다 심한 상태를 유지하던 다꽁의 방이 지금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방 바닥에는 가방이 서너개 널려 있고...책이 한줄로 높이 쌓여 있지만...다른 곳은 정리가 되었다.
지금도 문을 닫고 들어가면...난 웬만해서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지금도 다꽁은 책상위에 이런 저런것들...아무렇게나 올려 놓는다.
또한 난 한번도 다꽁의 책가방 검사를 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 엄마들은 아이의 가방을 한번씩 검사를 한다는데...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다꽁은 학교에서 나 온 유인물 중 중요하다 싶은 건 제때 제때 나에게 주고....중요하지 않다 싶은 유인물은 몰아서 한꺼번에 준다.
이렇게 아이의 공간을 인정해 주니...아이와 내가 조그만 트러블이 생겨도...서로 숨쉴 구멍이 되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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