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소간지'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간지의 소유자다. 수영으로 다져진 넓은 등근육은 여성의 백허그를 부르고, 미간을 찌푸릴 때 생기는 일자 주름은 고독한 영혼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SBS 수목드라마 '유령'으로 돌아온 소지섭. 극중 사이버 수사대를 진두지휘하는 그는 명석한 두뇌와 거친 몸싸움도 마다 않는 천상 남자였다. 1인2역, 아들을 둔 아버지의 모습, 대체불가능한 카리스마. 서른다섯살 소지섭은 과거 방황하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20대 시절보다, 이제 대중의 가슴속에 더욱 깊숙이 들어오려 한다.

# 가난하지만 거칠 것 없던 청춘, 꿈을 품다.

데뷔 전 그는 전도유망한 국가대표 수영 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수영, 중학교 1학년부터 수구를 시작해 한국체대에 장학금을 받고 특기생으로 입학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6년 간 그에게 수영을 가르쳤던 수영 코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는데 그만둔다고 해서 너무 아까웠다. 고3 때부터 모델활동을 시작했는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연예계 생활은 미루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 만큼 전도유망하고 놓치기 아까운 수영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당시의 그는 악착같은 스포츠맨 정신을 보였다고. 하루 12시간 이상씩 수경을 쓰고 맹훈련을 해, 항상 눈 주위가 붓고 멍들어 있어서 친구들이 "다크서클이 심한 아이"로 기억하기도 했다. 그때 만들어진 몸과 근성이 분명 지금의 배우 소지섭을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듀스 출신 김성재를 동경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김성재 옆에 서고 싶어서 1994년 청바지 브랜드 스톰의 오디션에 참여했다. 당시 스톰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야 했는데 청바지를 살 형편이 못돼 친구의 청바지를 빌려 입었을 만큼 집안 사정은 좋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홀로 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를 위해 "어서 빨리 회사원이 되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와 비슷한 꿈을 꿨던 친구가 바로 고인이 된 박용하였다. 두 사람은 데뷔 초 한집에 지내면서 의지했다. 빨리 돈을 벌어 가족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누구보다 악착같이 일했고, 누구보다 성실했다. 소지섭은 이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이의정 첫사랑 역할로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는데, 당시 서울과 지방을 오갈 교통비가 부족해 송승헌의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한번 관계를 맺기 어려워서 그렇지, 그 누구보다 의리 있고 인간미 넘치는 이가 소지섭이라고 그의 지인들은 이야기한다. 김성재와 함께 듀스로 활약했던 이현도가 제작하는 가수 소야앤썬의 앨범에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흔쾌히 나선 점도 그렇고, 박용하의 빈소에서 물한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오열하고 영정사진을 들었으며, 장례비까지 유족 대신 낸 뜨거운 우정은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안타깝게 만들었다.

개성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였지만 배우로서의 길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특유의 눈빛 때문에 'ㅆ가지 없어 보인다'는 말을 감독들에게 듣기도 했고, 그 역시 '읽기만 하는 연기를 해야하는' 대본 리딩을 못하겠다며 오디션 자체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말이 워낙 없는 탓에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묵묵하면서도 진지한 연기에 대한 그의 자세를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리에서 생긴 일'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대체불가능한 존재감을 발휘해 청춘 스타로 뒤늦게 주목받았다.


# 한류스타에서 래퍼, 예능인, 포토그래퍼, 바리스타로 '인생을 즐기다'

군입대 후 복귀작으로 택한 '영화는 영화다'도 소지섭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대작이 아닌 저예산 신인 감독의 영화에 한류스타인 그가 노개런티나 마찬가지로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절반의 기로에 서서 단 1%라도 믿고 사랑할 수 있다면 주저없이 그 길을 택하겠다"는 의미에서 51이란 숫자를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의 확신을 믿었고, 그의 믿음처럼 '영화는 영화다'는 대박이 났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자체로, 상황과 조건 없이 작품을 택한 그의 선택에 많은 충무로인들이 박수를 보냈다.

또한가지 의외의 선택은 일본, 중국 등 해외 작품에서 주조연급으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2008년 '게게게 노 키타로'란 일본 영화에서 기괴한 도깨비 분장을 해야 하는 조연급 출연을 했고, 2009년 '소피의 연애 매뉴얼'이란 중국어권 영화에서도 장쯔이와 같이 황당무계한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보여줬다. 진지함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어깨에 힘을 빼고 때론 망가지기도 하는 모습에 한국 팬들은 "의외의 매력을 발견했다"면서 놀라워했다. 그는 한류 스타로 범아시아권에서 받는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서 해외 작품에도 기회가 되면 출연하겠다는 뜻을 실천하고 있다. 팬서비스는 자신에게도 이어졌다. 힙합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그는 소속사나 관계자들도 말렸지만, 래퍼 'G'로서 음반 활동도 했다. 영화 '영화는 영화다' 속 엔딩 음악을 직접 부르기도 했고 디지털 싱글을 발표해 뮤직비디오까지 찍었다. 더 황당한 것은 뮤직비디오 '픽 업 라인'에 김병만과 정준하가 출연했던 것. 코믹 버전이긴 했지만 소지섭의 철옹성 같은 카리스마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오직 그대만'을 찍고 그는 동명의 책을 내면서 말미에 이런 글을 담았다. "같이 작업했던 분들이 쓴 글을 보고 내가 그렇게 갇혀 사나? 벽을 두나? 즐기지 못하면서 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울컥하고 슬퍼진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이번에야 비로소 제대로 알았다. 내가 이렇게 갑갑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나도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제 나도 그렇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즐기는 걸 노력한다는 말이 왠지 서글프게 와닿았지만 소지섭은 진짜로 노력하는 중이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꽃무늬 수영모자를 쓰고 망가지는 몸개그를 하는가 하면, '리틀 소지섭' 유승호와 깜짝 화보 이벤트 등도 진행했으며, 과묵했던 인터뷰 습관도 고쳐서 먼저 기자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변화는 끝이 없다. 포토에세이집을 발간해 타이거JK 등 유명인들과 함께 하는 모습도 보여줬고, 압구정에 직접 커피숍을 차려서 바리스타로 변신해 팬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연기 못한다는 이야기 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그. 소지섭은 스스로 연기 점수를 매긴다면이란 질문에 "51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점수는 나에게 그렇게 짠 점수가 아니다. 소속사 사무실 이름도 51k로 했다. 49%와 51%의 차이는 얼마 안되지만 승패가 갈리는 퍼센트다. 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점수다.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인데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는 관객들의 반응은 내게 최고의 찬사"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대중들은 이야기한다. 소지섭이란 배우가 있어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그는 '오직 그대만'을 찍고 "내가 연기를 잘하고 있는 건지, 기교만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자신 만큼은 속일 수 없다. 당분간 멜로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유령'에 멜로 라인이 별로 없는 건지 몰라도, 대중은 이야기한다. "소간지의 연기를 기교로 보는 이들은 없다"고. "서른, 마흔 되어서도 소간지는 방전되지 말고 달려야 한다"고 말이다.

사진=김/병//관 기자, MBC 캡처

이/  인  //경 기자 judysmall@enews24.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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