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2009년 엘르 인터뷰

밝은햇살13 2013. 12. 20. 09:57

ELLE (Korea) August 2009 edition








거칠고, 투박한, 쉽게 바스 라지지도 흔들리지도 않 을 진짜 남자

A bittersweet life


그가 걸어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알지 알았다는 뜻이다. 이글거리는 햇빛 아래 두터운 가을 재킷이 불편할 법도 한데 그저 덤덤하게 다시 카메라를 응시한다. 포토그래퍼 바로 뒤에서 그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처럼 시도해본 레게 머리가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 새삼 감탄하면서.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이 살짝 다가와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사람중에 저 헤어 스타일을 소화해내는 사람을 보는 건 딱 두번째에요.” 수영과 운동으로 오래 다져진 몸매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칫 부담스런 스타일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가 그다지 말수가 많지 않은 타입이라는 건 군더더기 없는 몸매처럼 분명해보였다. 그래도 그는 꼼꼼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스태프들과 상의하며 의견을 내놓는 건 잊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이 계속되면서, 표정이 많지 않던 그가 사실은 따뜻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곧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목격한 건, 현장에 놀러 온 다섯살 짜리 꼬마 아이가 ‘이초인 선생님, 껌 드세요.’라며 핑크색 버블껌을 내밀었을때였다. 몸을 많이 기울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그의 눈꼬리가 어느덧 잔뜩 풀어져있었다. 다음은 늠름한 두살짜리 도베르만 루나가 촬영을 위해 합류했을때였다. 여지껏 슛만 들어갔다 하면 별다른 미동도 없던 그의 표정이 목걸이 줄을 잡고 있던 도베르만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더니 심지어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걸 보고 만 거였다. 마지막은 촬영 중반쯤, 소지섭은 물론 스타일리스트와 친분이 있던 배우 유승호가 매니저와 함께 깜짝 방문을 했던 순간이었다. 평소 쏙 빼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유승호가 꾸벅 인사를 하자 살짝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인사를 건네는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활짝, 아주 기분좋게. 누가, 소지섭을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남자라고 했을까

요즘도 운동하나? 
너무 바쁘다 보니 운동 못한진 8개월쯤 됐다. 하다가 못하니, 아프다. 다시 시작해야지. 군대 제대할 무렵 12키로가 쪘던 것도 그 땐 3개월 동안 다 뺐으니까. 별명이 관장님이었다. 


아니, 그런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단지 인간관계가 급격하게 좁아질 뿐이다. 작정하고 운동하고 몸을 만들려면 마음놓고 먹을수 있는게 거의 없거든. 술은 물론이고.
소지섭하면 안그래도 운동하는 남자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왠지 평소엔 담배도 안 피려니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헤비 스모커가 따로 없다.
촬영 전엔 술도 안 마시는 편이긴 한데 막상 촬영 현장에 오면 담배는 핀다. 사실 알고보면 운동하는 남자들, 다 핀다.


그래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인가 보다. 오늘도 촬영 시작 시간인 열두시 정각에 들어왔잖아. 인상 깊었다. 
철저하다면 철저한데, 단지 관심두는 것만 그렇다. 관심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선,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드라마 끝나고 좀 쉬었나.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굉장히 바빴다. 한국 들어온지 며칠 안 됐으니까. <카인과 아벨> 끝난 이후로는 거의 쉬지도 못한 채 개인적인 일들이 많았다. 


보닌의 모델이잖아. 무려 화장품 모델로 활동중인데 솔직히, 거울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아침에 굉장히 얼굴이 많이 붓는 편이다. 아 얼굴에 뭐가 났잖아. 너무 부었다. 이런 생각밖에 안드는데. 

근데, 피부 상태 정말 좋다. 어차피 메이크업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진데. 
하하. 사실 잘 몰랐는데 메이크업 하는 분들이 나보고 피부가 좋은 편이라고 하더라. 별다른 트러블 같은 거 모르고 살았다. 복받은 거지. 


그래도, 하나둘 씩 선명해지는 주름은 좀 신경쓰이지 않던가
그 주름 말인데, 멋지지 않나. 사진에서도 굳이 주름 지우고 이런 거 별로거든. 개인적으론 배우들이 자꾸 만져서 너무 밋밋한 얼굴이 되는 건 느낌이 덜하는 것 같아 좀 별로다. 아, 그렇다고 내가 성형에 반대한다는 건 또 아니고.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거다. 나도 가끔 관리도 받고, 서른 넘으니 쓰는 화장품 종류도 많아진건 사실이지. (웃음)


배우로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어떤 의민가. 20대 초반과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가. 
나는 지금이 좋다.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그 때보다 약간의 연륜이 묻어나는 게, 내 얼굴이 조금씩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게 좋다. 조금더 나이를 먹고 싶고 그렇게 나이가 제대로 베어 나오는 연륜있는 얼굴을 갖고 싶고 그 느낌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 절대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얼마 전 스톰 모델 시절의 소지섭을 아는 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시절을 떠올리자니 까마득하더라. 그 세월동안 연기를 하고 작품 리스트가 쌓여 가면서 가장 많이 변한 건 무엇인가. 
스톰 시절이라, 물론 당연히 기억난다.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면, 아무래도 그거지. 그때는 연기를 싫어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하던 사람이었다면 이젠 연기를 좋아한다는 것. 전엔 인터뷰에서 자주 이야기했지만 사실 연기하는 거 싫어했으니까. 가서도 못한다고 계속 구박만 받고 별 재미를 못 느꼈으니까. 그래도 이젠 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편해졌다는 것. 약간은 즐길 줄 알게 됐다는 것. 아직도 어색한 부분 투성이긴 하지만.

그렇게 싫었는데, 어떻게 왜 했나. 
그땐 그게 생계였다. 


그러다 이게 바로 연기하는 맛이구나, 싶은 작품이 있었겠지. 
음, 연기의 재미라는 걸 느낀건 <지금은 연애중>. 그런가하면 얼마전 끝난 <카인과 아벨>은 오히려 내 연기에 대한 한계를 느낀 작품이었다. 이게 스케일도 크고 장르도 굉장히 복합적이고 정말 거대하잖아. 하다가 막혔다. 답을 못 찾아서 감독님 붙잡고 한참을 그랬다. 물론 선배님들한테도 많이 배웠지.

역시 소지섭이란 배우를 다시 보게 한건 개인적으론 <영화는 영화다>였다. 
내게도 그랬다. 영화는 영화다, 는 특별했지. 뭐랄까 내 얼굴이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더라. 연기들 나이를 먹는 느낌.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 자체가 달라진 거, 그게 정말 좋았다. 

몇번이나 봤나? 
극장에선 열 번쯤 봤다. 관객들 속에 섞여 본 적도 있었는데 그중 한번은 나와 친구들 몇몇 제외하고 나닌 관람객이 딱 네명, 그러니까 커플 두 쌍 밖에 없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무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재미를 붙이고 나선 오히려 재능에 대한 불안이나 벽에 부딪친 느낌을 맞딱뜨린 적은 없었나? 연기가 정말 안 되고 어려우면 어떻게 하나? 
재능이라면, 내가 확실히 타고난 스타일은 아닌것 같다. 그런데, 배우는 다 똑같다. 지난 작품들 다시 보면 얼굴 화끈거리고, 부족한 게 눈에 막 들어오고. 나는 대본 싸안고 있다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연기 선생님을 찾아간다. 내 또래 배우들은 이제 안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거 막막한 거 있으면 찾아가서 상의하고 배우고 그런다. 그래야 늘지 않겠나.


몇년 전인가 소지섭 팬클럽이 직접 제작한 달력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지섭씨 잘 부탁한다’며 정성스런 편지까지 보냈더라. 요즘엔 확실히 팬들의 반응이나 행동 범위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도 없을 만큼 적극적이다. 

그런 일도 있었구나.(웃음) 팬 커뮤니티 같은 것도 당연히 보긴 하는데 답글은 잘 안남긴다. 인터넷 사이트 구석에 내 이름 있으면 그것도 보고. 몇 년전에 한번 글을 남겼다가 ip 추적 당한 적이 있다. 정말 어떻게들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단, 한번 글을 남기게 되면 사람들이 기대하게 되는 걸 아니까 자제하는 편이 크다. 사실 내가 꾸준히 뭘 해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까.


자신의 영향력을 특별히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면? 
사실, 우리 나라에선 그다지 팬들과 맞딱뜨릴 일이 없다. 오히려 외국 공항이나 이런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느낌이 남다르지. 

개인적으론 점점 한류의 실체를 모르겠다.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한류, 어떤가? 
솔직히 어떤 부분들은 언론에 의해 과대포장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꼭 한류배우가 되야겠다는 건 아니다. 그런 것 보단, 이건 그냥 새로운 시도의 일종인거다. 다른 나라에서 전혀 다른 스탭들과 일해보는 것. 일본에선 일본대로, 중국에선 또 중국대로, 그게 몹시 비슷하면서 다르고 그렇더라. 연기는 어차피 계속 할거니 그래서 기회가 닿는 한 새로운 것, 재밌는 건 다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거기 하나만 목매어 돌진하겠다는 건 아니고.

<소피의 연애 매뉴얼>도 그래서 선택한건가? 

일본에선 일본 스탭들과, 중국에선 또 중국 스탭들과 일해보는 것들이 꽤 색다른 자극을 준다. 재미있다. 이번 영화는 장즈이라는 국제적인 배우와 일해본 것도 큰 경험이었고. 배우고 느끼는 게 많다. 


로맨틱 코메디라는 설명을 듣고 어쩐지 바로 상상이 안 되더라. 그만큼 소지섭하면 무겁고 진지한 배역에 대한 잔상이 강했나보다. 

나도 안다. 우리나라에선 내가 여지껏 맡은 역들이 하나같이 무겁고 다 그랬지. 특히 우리 드라마는 그렇게 밝은 캐릭터의 작품은 또 얼마 없잖아. 그런데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에선 나의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역을 맡긴다. 그래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게 오히려 편안할 때도 있다. <소피의 연애 매뉴얼>은 장르로 치면 일종의 로맨틱 코메디다보니 어쩌면 좀 망가진 모습을 볼수 있을거다. 몸개그도 있다. <게게게노 기타로>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그 영화 제목이 우리식으로 말하면 요괴잖아. 사실 우리나라에선 전혀 제안도 들어오지 않는 걸 하게 된 거다. 난 그런 게 오히려 즐거웠다. 어차피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한번에 큰 명성을 얻을 것도 아니잖아.

한국에서도 좀 부드러운 얼굴을 보여줄 때가 된거 아닌가?
글쎄. 멜로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스크린에 가득 클로즈업된 내 얼굴을 본다고 생각하면, 아직 멜로의 섬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낼 만큼의 연륜이랄까, 내 얼굴에서 그런 게 묻어나오질 않는 것 같다. 거친 연기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르잖아. 이삼년쯤 더 기다리면 그래도 낫지 않을까.

소지섭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던 약간 차갑고 날 선 듯한 이미지가 바뀐 건 언젠가 봤던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몇줄의 문장 만으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더라. 요즘도 어머니와 가끔 술 마시고 그러나? 
어머닌, 뭐 그 부분은 변한 게 없다. 당연히. 그런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어머님이 술을 드시면 안되서, 함께 마시진 못한다. 

연기에 대한 말씀도 하시나. 
그런데 부모라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자식 고생한 장면만 보이시는 거지. 드라마는 너무 재밌었다고 그러시는데 <영화는 영화다>만 해도 맞고 싸우는, 이런 장면만 이야기하신다.
배 우란 어쩔수 없이 이미지를 안고 가는 만큼 외로운 직업인 것 같다. 소지섭이란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억울한 오해가 있다면 뭘까. 몇 년전만 해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거만해 보인다, 까칠하다, 인상 쓴다, 싸가지 없다, 같은 말들. 눈이 잘 안보여서 멀리서 다른 사람이 걸어오는걸 못 알아보고 인사를 못해서 더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전에 비하면 말 수도 굉장히 많아지고 부드러워진 거라면서? 
요즘은 내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이제 전과 달리 주인공 급으로 분류되어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 때가 많으니까. 어떤 작품이든 마찬가진데 주연급이 현장에서 인상 쓰고 있으면 그 현장 분위기라는 게 몹시 험악해진다. 당연히 작품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지. 나도 그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이왕이면 잘 맞춰나가려 한다.

소간지는 물론이고 소지섭 앞엔 참 많은 말들이 따라 다닌다. 자신의 이름 앞에 진짜 붙이고 싶은 수식은 뭔가? 

배우. 한류 배우니, 스타 배우니 이런 말들이 아니라 그냥 배우. 앞으로도 오래, 그거 하나면 된다.
전에 문소리씨를 만났는데, 연기만 하면서 그렇게 온 관심을 나에게만 집중시키면서 늙어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하더라. 소지섭도 인생에 있어 연기 말고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연 기를 계속 하다보니까 아무래도 예전 친구들과 걥이 커진다. 활동 반경이 너무 달라지니까 그건 어쩔 수 없더라. 그래도 참 아쉽다. 지금도 주변에 친구들이랄까 지인들이랄까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켜나가고 싶은 건 그 사람들인 것 같다.


5년 후, 혹은 10년후의 소지섭, 상상이 되나? 혹시 감독이 되고 싶다거나? 
연기에 올인하는 배우들은 자연스레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기도 하던데.
감독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혹시 제작이라면 모를까. 5년후엔 아마 당연히 연기를 하고 있을테고. 음, 10년후엔, 아마도, 그때도 좋아하는 작품만 하고 있지 않을까?


그거, 가장 이상적인 형태 아닌가? 

아, 그런건가. 하하.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해오던 대답이 또 하나 있는데, 내 꿈은 호텔을 경영하는 거다. 꼭 그걸 하겠다고 야심차게 준비한다기보다 내 스스로 숨쉴 틈을 만들어주는 거다. 마찬가지로, 평생 기자하려고 생각하진 않을 거 아닌가?

그렇지. 지금 하는 일과는 별개로 원래 꿈이라는 게. 
나도 그렇다. 꿈이 없다면 너무 답답하지 않나. 연기를 좋아하지만 꼭 이 길 하나 뿐이어서 매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안달하며 가고 싶진 않다. 

어떤 호텔을 어디에 세울건데? 혹시 남태평양의 보라보라라거나? 
아니지. 베가스. 호텔하면 역시 라스베가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