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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 혹은 당신을 위해 울어 줄 친구의 얼굴(헤럴드 경제)

밝은햇살13 2013. 12. 19. 14:08

소지섭, 혹은 당신을 위해 울어줄 친구의 얼굴

2010-07-07 11:00

한류 스타 박용하가 세상을 떠난 지난달 30일 오전,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내가 장례식장의 어두운 복도 끝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꺽꺽’ 소리 죽여 울던 그는 배우 소지섭이었다.

매니저의 팔에 이끌려 조문실에 들어가면서도 그는 차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황망한 표정으로 비틀비틀 조문실에 들어간 지 사흘이 지나서야 소지섭은 양팔에 친구 박용하의 영정 사진을 안고 나왔다. 면도조차 하지 못한 그의 턱밑에는 그새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있었다.

그 자리엔 ‘만인의 연인’도 없었고, 뭘 입어도 폼난다는 ‘소간지’도 없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온 얼굴을 밉게 찌푸린 채 엉엉 소리 내 우는 모습에 팬들은 적잖게 당황해야 했다. 양복은 사흘째 갈아입지 않아 구겨져 있고 날렵한 두 눈은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다. 

고(故) 박용하의 죽음이 팬들에게 더 사무친 것은 이렇듯 친구의 죽음을 온몸으로 슬퍼했던 소지섭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한 죽음이란 살아남은 자가 있어 더 큰 슬픔이고, 슬퍼하는 이들이 있어 때로 감동을 자아내는 비극이 되는 법이다. 박용하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팬들의 슬픈 눈은 소지섭의 얼굴에서 감동의 느낌으로 거둬졌다. 그때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나를 위해 울어줄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소지섭의 눈물엔 우리가 잃어버렸던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정, 믿음, 약속 같은 것들.

▶ ‘소지섭’이라 쓰고 ‘나를 위해 울어줄 친구’라고 읽는다

소지섭은 늘 환영 속의 ‘스타’였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뭇 여성의 로망이었고, ‘영화는 영화다’에선 폼나는 건달이었다. 물론 그가 연기하는 인물, 그가 출연하는 작품 속에선 우정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으며 미움과 분노, 용서 그 모두가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친구를 위해 울었다. 그러나 그것은 카메라 앞이었고, 스크린 속이었다. 한 발만 벗어나면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흉흉한 소식이 일상적인 연예계였다.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가 누구와 손을 잡으며, 누가 누구를 소송에 걸었다는 뒷얘기가 끓이지 않는 냉혹한 세계였다. 사랑은 우스개가 되고, 우정은 돈으로 계량화되며, 비난과 폭로마저 예능 프로그램의 먹잇감이 되는 동네였다. 대중이 사는 세상이라고 다를까.

그래서 소지섭의 눈물은 특별했다. 분장하지 않은 민얼굴의 인간이 있었고, 연출되지 않은 슬픔이 있었다. 같은 꿈을 꾼다는 이유만으로 형제만큼 친해졌던 우정이 있었다.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키며 상주를 자처하던 소지섭은 남몰래 수천만원에 달하는 장례비용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 고인의 부모에게는 “이제는 제가 아들”이라면서 두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소지섭은 친구가 썩 많은 편은 아니다. 고(故) 박용하의 죽음을 이틀 앞두고 그는 “(송)승헌이 형과 (박)용하”를 가장 친한 친구로 꼽았다.

동갑내기 박용하와는 유달리 사이가 가까웠다. 1998년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박용하와 신인 시절 몇 년간 한집에 살며 배우의 꿈을 함께 키웠다. 내성적인 그와 달리 박용하는 쾌활하고 적극적인 편이었다. 주로 홀로 시간을 보내던 소지섭에게 박용하는 스타크래프트와 스노보드를 함께하자고 졸랐다. 훗날 박용하는 소지섭을 “한 번 마음을 열면 좋은 것만 주려 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 ‘감동’이 필요한 시대의 스타

다큐멘터리가 인기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든,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이든, 병든 사람의 이야기이든, 스타들의 눈물겨운 성공기이든 사람들은 이제 연출되지 않은 ‘진짜’가 주는 감동에 목말라한다.

소지섭은 ‘진짜 이야기’에서도 감동을 주는, 몇 안 되는 스타 중 하나다. 소지섭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본 사람들은 그를 다른 스타와는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묵묵히 진심을 내보이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사석에서 만난 소지섭은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경력 13년차에 들어섰는데도 언론과의 만남을 여전히 낯설어했다. 그는 “언변이 없어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하지 못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미디어가 연출하고 조작하고 포장하는 이미지 속에 살지만 그의 ‘민얼굴’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말로 호들갑을 떨 줄도 모른다. 그와 처음 작품을 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소지섭을 “과묵한 배우”라고 평한다. 말수가 없고 낯을 많이 가리는 그는 ‘한류 스타’라는 수식어와 맞물려 종종 ‘건방지다’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소지섭은 과거를 잊지 않는다. 박용하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전직 수영 선수였던 그는 2000년 SBS ‘뷰티풀 선데이’에서 릴레이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에 함께 출연한 고(故) 조오련 씨를 잊지 않았다. 데뷔 초였던 당시 일부러 방송 카메라를 피하며 빙빙 돌던 그에게 조 씨는 “수영인이란 긍지를 잊지 말아라”라고 다독여줬다. 조 씨가 타계하자 소지섭은 “지금 해남으로 내려가 봐야 하는데…”라면서도 스케줄상 그럴 수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영인 소지섭’이라고 새긴 화환을 고인의 빈소에 보내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은 당대 최고의 한류 스타이자 엄청난 재산가이지만 94년 갓 데뷔한 소지섭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가장이었다. 1남1녀 중 장남인 그는 ‘1인분 더’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홀로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반드시 일인분을 더 포장해가는 습관 때문이다. 지난 2005년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그가 한 첫마디도 “먹고 싶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가장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지난 6월, 팬들은 유망한 한 스타를 비운에 떠나보내야 했지만, 또 다른 스타가 민얼굴로 보여준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지인들이 말하는 소지섭

●‘영화는 영화다’ 제작사 스폰지하우스 조성규 대표

=소지섭은 말수는 적지만 속이 깊은 사람이다. 눈물을 쉽게 보이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 장례식장에서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아, 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지섭은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극 중 똘마니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늘 데리고 다녔다. 개봉 4주차까지 지방을 돌며 무대인사를 자처하는 한류 스타도 흔치 않다.

많은 연예인이 ‘의리’를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들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소지섭은 그런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친구다. 하지만 묵묵히 도와야 할 때를 아는, 속 깊은 사람이다.


●MBC ‘로드넘버원’ 김진민 PD

=촬영 현장에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배우다. 말수가 많은 배우는 아니지만 팀워크가 매우 좋다. 막내부터 대장까지 일일이 챙기고 늘 밝은 분위기를 주도한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이기도 하다. 왜 이 작품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남 주기 아까워서”라고 하더라.(웃음) 캐스팅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일단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촬영 중 부상이 잦았는데도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았던 배우다.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한 사람이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