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커버 스토리
가장 담백한 이름,배우 소 지 섭
소지섭은 모순된 배우다.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얼굴이지만,
그의 눈빛은 애절함과 고독이 어우러져 부드럽게 빛난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 같지만, 그의
심장은 ‘사랑’과 ‘우정’ 같은 맹목적인 감정에 누구보다 빨리 박동수가 빨라질 것 같다.
가장 모순된 것은 ‘배우’로 누구보다 크게 인정을 받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는 ‘배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우 소지섭, 남성적이면서도 애잔한 매력
촉망받던 수구선수였던 소년은 돌연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먼 미래에 운동코치를 하고 있을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기 경험도 전혀 없었지만 처음으로 도전한 일은 광고 모델. 열아홉 살이던
1995년 그는 의류업체 STORM의 모델 오디션에 응시한다. 그리고 합격, 청바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다.
그 뒤 뛰어난 수영 실력이 장점이 되어 출연한 SBS <뷰티풀 라이프>에서 고 조오련 선수와 함께
대한해협을 건너는 힘든 미션을 누구보다 묵묵히 수행하며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수영만 잘하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예능은 하나도 안 하고 오로지
수영만 열심히 한거였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면 재미있게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저는 예능 감각은
정말 없었던 것 같아요.” 내성적이고 과묵한 그의 성격은 예능 프로그램 적응에는 힘들었지만
오히려 연기 면에서는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02년 SBS <지금은 연애중>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말괄량이 여주인공을 무뚝뚝하지만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보는 최규인 역을 맡아 속 깊고 매력적인 그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지금은 연애중>에서 최규인은 실제 저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 어서 편안하게 연기했어요.
저는 다시 본 적이 없지만 많은 분들이 <지금은 연애중>을 다시 보기 하시고, 그때처럼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연기를 보여줄 계획은 없냐고 물어보세요.” 여자친구에게 과외지도를 해주었는데, 점수가 낮게 나오자
토끼뜀을 시켜 놓고 그 모습이 귀여워 남몰래 웃던 <지금은 연애중>의 소지섭. 그 풋풋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이후 SBS <발리에서 생긴 일>,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 영화 <영화는 영화다>와 최근 작품
MBC <로드 넘버원>까지 소지섭은 남성적이면서 애잔한 그만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구축했다.
“언젠가부터 무거운 역만 맡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드라마에서는 이제껏 보여 드리지 못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캐릭터를 해볼 계획이에요. 하는 작품마다 너무 비극적으로 끝났죠.”
그의 말대로 소지섭이 출연한 작품은 대부분 죽음으로 마무리되며 ‘새드엔딩(Sad Ending)’이란 공식이
은연중에 있을 정도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안타까운 결말이 있었을까?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결말은 개인적으로도 너무 가슴 아팠어요.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도 극중 인물들이
너무 가여워서 견디기 힘들었죠. 극중 주인공들이 제발 죽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는 시청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의 출연 작품들은 결말이 비록 ‘Sad Ending’이었지만 시청률만큼은 늘 ‘Happy Ending’이었다.
그런데 최근 작품 <로드 넘버원>은 100% 사전제작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것에 비해 한 자릿수라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수시로 체크하며 대본을 만들어 나가는 드라마와 달리
100% 사전제작이란 점이 오히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일조한 건 아닐까?
하지만 사전제작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100% 사전제작은 반드시 필요해요. 쪽대본을 받아들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배우인지 아니면 기술과 테크닉으로 연기하는 기계인지 회의가 들 정도였죠.
<로드 넘버원>은 비록 지금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반드시 추후에 제대로 인정받을 작품이라고 믿어요.”
이제 <로드 넘버원> 종영을 1주일 앞두고 있다. 이 드라마가 끝나면 소지섭에게는 또 어떤 수식어가 붙게
될지 모른다. “저는 죽을 때까지 그냥 ‘배우’ 소지섭이면 좋겠어요. 어떤 어떤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기보다
그냥 100% 담백한 ‘배우’라는 타이틀만 지니고 연기하고 싶어요. ‘배우’ 소지섭으로 계속 불리기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성실하게 연기할 거예요.” 배우로서 이보다 더 군더더기 없이 정직한 소망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면 더 나은 것을 가지고자 애태우는 마음을 버릴 수 있다면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신뢰를 받는
진중한 배우가 될 것이다.
저는 죽을 때까지 그냥 ‘배우’ 소지섭이면 좋겠어요.
어떤 어떤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기보다 그냥 100%
담백한 ‘배우’라는 타이틀만 지니고 연기하고 싶어요
모델 소지섭 열정과 배려
최근 소지섭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CJ 건강음료 <한뿌리> 모델에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 CF를 촬영할 때는 마치 액션영화를 찍듯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어요. 촬영 다음 날 앓아누울 정도였죠.
그런데 <한뿌리>는 제가 모델이 되기 전에도 자주 먹던 음료여서 더 기억에 남는 광고가 됐어요.
광고 출연 덕분에 촬영 스태프들이나 동료들에게 <한뿌리>를 마음껏 나눠 주면서 선심을 쓸 수 있는 것도
보람 있고요(웃음). 반응이 아주 좋아요.” 광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훈훈하다. 소지섭은 함께 촬영하던
엑스트라 배우 중 한 명이 연기력 부족으로 중간에 하차하게 되자 직접 그 배우에게 연기 지도까지 하며
하차를 막았다고. “저도 신인시절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만약 그분이 하차하면
저희는 빨리 광고를 완성하겠지만, 그분에겐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을 설득해서 그냥 함께 끝까지 찍자고 했죠. 저도 처음부터 호흡 맞추던 분이 편하기도 했고
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그런 배려도 나온 게 아닐까. 남다른 팀워크로 완성된 <한뿌리> CF는
블랙 슈트를 입고 럭비를 하는 거친 남자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으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닮은꼴 형제라 불리는 유승호와 김치냉장고 광고 촬영도 마쳤다.
친형제 같다고 할 정도로 흡사한 외모를 지닌 유승호와 함께한 촬영은 남다른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아휴, 승호한테 미안하죠. 열일곱 살 차이면 아빠와 아들 같은 존재인데 저를 닮았다고 하니 승호한테
제가 어찌 미안하지 않겠어요(웃음). 더구나 승호가 훨씬 잘생겼잖아요.”
사실 사춘기인 유승호는 선배 소지섭과 닮았다는 말에 부담감과 예민함을 보였다고. 그런 유승호에
대한 소지섭의 배려가 엿보이는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은 2년 전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할 기회가 있어
처음으로 만났다. 촬영장에서 소지섭이 덥석 손을 잡으며 “승호야, 잘생긴 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하며
너털웃음을 짓자 그때부터 정말 친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영화는 영화다>의 부제목은 <소지섭은 소지섭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갈색 푸들 키키와 함께 노는것이 행복하다는 소박한 사람. 개인적으로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맡은 작품에 대한 책임은 절대 저버리지 않는 사람. 연기 미숙으로 하차위기에 처한 엑스트라 배우의
연기 지도를 자청한 의리 있는 사람. 누군가 소지섭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소지섭은
소지섭이었다”라고 답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이름 안에는 우리가 그에게서 발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미가 있고 성숙한 연기자로서의 진지함이 있고, 사람에 대한 겸손함이 있다. 동시에 미숙함과
결점, 불안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지섭’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글 김서희